장애인 직업재활훈련장을 가다- “일하니까 행복해요”

  • 기사입력 2019.05.22 09:23
  • 최종수정 2019.05.24 16:58
  • 기자명 이서노 기자
유빈(사진 바깥쪽) 양과 현영 양이 주문받은 커피를 준비하고 있다.

일할 수 있는 연령대의 사람이면 누구나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당연한 이치다.

일은 사람들의 생계수단이자 삶의 질을 높이는데 필요한 원동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며, 청년 장애인들은 더욱더 간절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시스템은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한계점이 있다. 일정 규모의 기업이나 업체에만 의무고용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안군과 같은 작은 군 단위 지자체는 의무고용 기업이나 업체가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아 장애인 인구 대비 일할 곳은 적다. 그나마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바다의 향기가 있어 일정 부분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직업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 장애인들도 다양한 직업을 꿈꾸고 있다. 이들의 바람에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제도적 장치와 다양한 직업재활훈련시설이 필요하다.

직업재활훈련교육시설이 장애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변화를 가져다주는지 지난 20일 부안장애인종합복지관을 찾아가봤다.

이곳에는 2017년도부터 장애인들의 직업재활훈련교육장소로 운영되고 있는 ‘카페134’가 있다. 카페 이름은 복지관 주소인 용암로 134번지를 붙여 지은 것이다. 별 뜻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복지관 내부 직원들의 공모를 거쳐 선택됐다고 한다.

이 교육장은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일반 커피숍처럼 직접 체험을 하며 몸으로 익히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다. 커피 등 음료 주문 접수를 비롯한 손님 응대, 계산, 물품 재고관리, 커피머신 청소 등 실제 카페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훈련대상은 바리스타 자격증 소지자 및 바리스타 취득 예정자(훈련생)들이며 실제 이곳 훈련생 가운데 3명이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또 지역사회 외부 행사 및 유관기관과 연계해 일일찻집 등을 운영하며 사회와 소통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카페134에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해 실전경험을 쌓고 있는 2명의 교육생이 있다.

이유빈(22) 양과 심현영(20) 양으로 유빈 양은 작년부터, 현영 양은 올해부터 카페 현장경험 훈련을 받고 있다. 이들의 일터를 살짝 엿보기 위해 이날 오전 10시쯤 카페134를 방문했다.

카페134 입구에 들어서자 오른편에 카페를 소개하는 글이 눈에 띄었다. ‘오늘은 어떤 커피 드실래요?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바닐라라떼, 카페모카, 카라멜마끼야또, 헤이즐럿라떼.’ 또 ‘커피 맛있어요?, 카페134는 직업재활훈련으로 운영중입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분위기는 여느 커피숍처럼 커피와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유빈 양과 현영 양은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메리카노 등 밀려드는 주문에도 서둘지 않고 능숙하게 커피를 내렸다. 분쇄된 원두를 포터필터(커피 원두가루를 담는 추출도구)에 담아 탬핑(포터필터에 담은 커피가루를 탬퍼를 사용해 수평을 맞추는 행위)을 하고 포터필터를 머신에 장착, 농축 커피를 추출해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순식간에 내놨다.

주문을 받고 내놓느라 바쁜 시간이었지만 복지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유빈 양의 시간을 잠깐 뺏었다. 그가 바리스타가 된 게 궁금하기도 했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분쇄된 원두커피를 포터필터에 담고 있는 유빈 양.
분쇄된 원두커피를 포터필터에 담고 있는 유빈 양.

유빈 양은 선한 인상에 앳된 얼굴이었고 동그란 모양의 검정색 테두리 안경을 끼고 예쁘게 화장을 한 모습이었다.

“일이 어때요” 하고 물었다. “괜찮고, 재밌어요.” 대답은 짧았지만 행복해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유빈 양은 21살 때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했다. 17살 때부터 바리스타가 되고 싶어서 선화학교를 다니면서 자격증을 취득한 것이란다.

“어떤 종류의 커피와 차를 만들 수 있어요”라고 또 물었다. 생각보다 많은 종류를 얘기했다.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푸치노, 카라멜마키아또, 헤이즐럿, 복숭아티, 레몬아이스티도 만들 수 있어요.”

유빈 양은 현재 이곳에서 바리스타 일을 하고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손님들이 자신이 만든 차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단다.

유빈 양은 큰 욕심이 없었다. 자신만의 카페를 가져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변했다. 순수함이 전해지는 대답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바리스타를 하고 싶다는 유빈 양. 티 없이 맑은 그녀의 마음에 밝은 내일이 있기를 소원해 보며, “화이팅! 힘내요 유빈 양.”

분쇄된 원두커피를 포터필터에 담고 있는 현영 양.
분쇄된 원두커피를 포터필터에 담고 있는 현영 양.

현영 양과도 대화를 나눴다. 현영 양은 성격이 활발했고 얼굴은 항상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해야 커피를 맛있게 내릴 수 있어요?” 라고 질문을 했다.

밝은 얼굴로 현영 양는 “커피는 내리는 속도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빨리 내리면 쓴맛이 나고, 너무 늦게 내려도 맛이 없고, 커피 맛은 적당한 시간 조절이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막힘없이 말했다.

현영 양도 자신이 내려주는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한다.

특히 현영 양은 이곳에서의 실전 카페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쯤 일반 커피숍에 취직해 볼 생각이란다. 유치원 선생이라는 또 다른 꿈이 있지만 우선 사회에 나가 카페에 취업해 일하는 게 첫 번째 꿈이다. 활달한 성격만큼 적극적인 현영 양.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처럼 현영 양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길 기대하며, 역시 “화이팅! 힘내요.”

유빈 양과 현영 양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이들이 내리는 커피 맛은 어떤지 궁금해 카페134에서 몇 분을 만나 맛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대부분 “맛이 좋다. 괜찮다”라고 평가했고 또 이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사람도 있었다.

필자도 그곳에서 지인을 만나 아메리카도 한 잔을 선물로 받아 마셔봤다. “음. 괜찮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또 한 어르신은 커피 맛에 대한 평가보다는 유빈 양이 긍정적으로 변화된 것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 어르신은 “작년 처음 왔을 때는 계산도 서툴고, 말도 잘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일을 잘하고 있다”면서 “얼굴도 밝아졌을 뿐만 아니라 농담도 곧잘 한다. 이대로라면 비장애인 아이들과 같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르신은 “일반 아이들은 조금 힘들면 에이 안 해 하는데, 저 아이들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열정적이고 배울 점이 있다”고 칭찬했다.

이 어르신의 말처럼 장애인 직업재활훈련교육장을 통해 장애인들이 변화되고 비장애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면 직업 분야를 더 다양하게 확대해 운영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예를 들면 커다란 공간 안에 커피숍을 비롯한 음식점, 제과점, 의류, 신발, 악세사리 등 다양한 코너를 조성해 카페134처럼 실제 현장경험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한다면 장애인들의 직업 선택 폭도 넓어지고 취업률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해 볼 만하다.

“일하니까 행복해요.” 이 말이 유빈 양이나 현영 양의 입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더 많은 부안의 청년 장애인들로부터 나올 수 있도록 행정의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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