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 저서 통해 “서림공원 시비에 새겨진 ‘백운사’ 매창 시 아니다”

  • 기사입력 2020.09.22 11:26
  • 최종수정 2020.09.27 15:27
  • 기자명 김태영 기자
서림공원에 세워진 백운사 시비. 매창의 시로 표기되어 있다.
서림공원에 세워진 백운사 시비. 매창의 시로 표기되어 있다.

부안 서림공원의 한 시비에 매창의 시로 소개되고 있는 ‘백운사’가 매창 시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향토문화와 민속’의 저자인 김형주 선생은 자신이 지난해 말 발간한 ‘김형주의 종이글과 빗돌글’을 통해 “부안군이 이매창 시인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7년 7월 1일 서림공원의 한 시비에 새긴 백운사라는 시는 매창의 시가 아닌 작자 미상의 유전시”라고 밝혔다.

그는 이 책에서 “백운사라는 한시는 매창의 유일 시집인 ‘매창집’에도 없는 시 일뿐만 아니라 그의 시라는 아무런 전거도, 논증된 바도 없는 시로 작자미상의 떠돌이 유전시”라면서 “그런데도 부안군은 이 시를 매창의 대표적인 명시인 것처럼 시비를 세워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 시비를 세운 부안군과 이일을 주도한 당시 문화원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는 “떠도는 유전시에 불과한 백운사라는 시를 매창의 시로 오인해 시비를 세운 것은 매창 문학을 심도 있게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한 신중치 못한 짓”이라며 “57수나 되는 확실한 그의 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전거도 없고 논증도 되지 않은 작자 미상의 시를 매창의 시인 양 둔갑시켜 서림공원에 시비로 세운 일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부안군과 당시 문화원장을 에둘러 비판했다.

그는 작고한 A전 군수에 대해서도 “전임자가 한일이라 잘 모르는 일이라 하면서 임기가 끝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적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잘못된 것을 알고도 바로잡지 않고 있는 부안군을 질타하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이 시비의 건립은 어느 개인이나 사회단체가 아닌 부안군청이 한 일”이라며 “후손들을 오도하고 학계와 연구자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부끄러움을 주는 이 시비를 언제까지 세워둘 것인가”라고 질타했다.

이어 “모름지기 이 모든 책임은 부안군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면서“이 시비는 부안군이 군민의 혈세로 세운만큼 조속히 철거하거나 매창의 진짜 시로 개비해 매창 문학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형주의 종이글과 빗돌글’에는 매창집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실려 있다.

이 책에 따르면 현재까지 매창의 문학작품으로 밝혀진 것은 시조로는 가곡원류, 청구영언, 여창유취, 대동풍아 등에 실려 있는 ‘이화우 흩날일 제’와 매창집에 수록된 한시 57 수뿐이다.

당초 매창집에는 총 58수의 시가 실려 있지만 이중 ‘윤공비’라는 시는 매창의 시가 아닌 것으로 최근 연구결과 밝혀지면서 매창의 시는 57수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

이 책은 매창의 시가 수 백 수일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설일 뿐이라고 명시했다.

매창(1573~1610)은 부안출신으로 조선시대 기생이자 여류시인이다.

이귀, 허균 등 당대의 선비들과 교류했으며 황진이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명기로 꼽힌다.

이화우 흩날릴 제 등 수십여 편의 시를 남겼다.

‘이화우 흩날릴 제’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 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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